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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류학자 로라 보하난은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사는 티브 Tiv 족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영국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스트랫포드 Stratford 를 방문하여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영국인 친구와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당신과 같은 미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거요. 그건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작가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당시에 보하난은 "햄릿"과 같이 위대한 문학 작품에서 다루어진 사건의 내용이나 그 동기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러자 친구는 그녀에게 "햄릿" 한 권을 주면서 티브족과 함께 생활하는 중에 그것을 다시 한 번 잘 읽어보면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후 영국을 떠나 티브족의 한 마을로 들어간 보하난은 어느 날 촌장의 부탁으로 마을의 장로 elders 들에게 "햄릿"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해 줄 기회를 갖게 된다. 그녀는 "햄릿"을 이야기해 주는 과정에서 자기의 해석과 그들의 해석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결국 그녀는 그들의 설명과 해석을 듣게 되고, 그에 따라 흔히 보편적이라고 주장되는 가치나 윤리, 도덕 같은 것이 사실은 특정의 문화적 배경에서 생겨난 특수한 것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티브 족,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로라 보하난)

사용자 삽입 이미지

Tiv

<티브족 어린이, 이미지 출처 : http://www.artsci.wustl.edu/~anthro/images/fulboy1.JPG >

나는 이번이 두번째의 아프리카 여행이었기 때문에 설령 아주 먼 오지에 들어가 생활한다 해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자신만만하게 아프리카로 향했다.

(중략)

그러자 촌장은 내게 그 내용을 이야기해 달라고 청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들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해 주기'란 단순히 이야기의 내용을 말해 주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고도의 화법을 가리켰다. 그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의 수준은 매우 높았으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비판능력이나 수준도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도저히 그들이 바라는 '이야기해 주기'를 할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촌장을 비롯한 여러 장로들은 정말 내가 보던 '종이쪽지'의 내용이 꽤나 궁금했던 것 같았다. 나는 절대로 못하겠다고 계속 우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내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지 내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자기들도 내게 말도 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겁을 주었다.

촌장은 내가 그들이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못하더라도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약속했다. 또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러니까 그걸 탓하지는 않을거요. 그렇지만 우리가 당신에게 이야기할 때 설명해 준 것처럼 당신도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자세히 설명해 주길 바라오." 마침내 나는 이번이 "햄릿"이야기가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촌장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돕기 위해 내게 술을 좀더 주었다. 장로들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뒤로 기대앉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도 그제도 아닌 아주 옛날 옛적에 어떤 일이 일어났어요. 어느 날 밤에 대추장(*보하난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최고 권력자를 대추장이라고 부르는 티브족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유럽에서 사용하는 왕이라는 용어 대신에 대추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편집 주)이 사는 성을 지키던 세 남자는 옛날의 대추장이 자기들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매우 당황해 하면서 두려움에 벌벌 떨었어요."

"왜 그는 더 이상 대추장이 아니었나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그는 죽었거든요. 그들이 대추장을 보았을 때 당황해 하고 두려워했던 것도 그 때문이죠"라고 내가 설명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한 장로가 옆 사람에게 담뱃대를 건네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그건 이미 죽은 옛날의 대추장이 아니었을 거요. 그건 마법사가 보낸 악령 omen 이었음에 틀림없어요. 계속하시오."

나는 약간 주춤하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들 세 사람 중 한 명은 '지혜로운 사람'(*보하난은 '학자'를 번역할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그 의미에 가장 가까운 번역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했지만, 불행하게도 그것 역시 티브족에게는 마법사를 뜻하는 용어였다* 편집주)이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은 호레이쇼였답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호레이쇼는 죽은 대추장에게 당신이 무덤에서 편히 쉬려면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러나 죽은 대추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말없이 사라졌어요. 그들은 더이상 대추장을 볼 수 없었죠. 호레이쇼는 이 일이 죽은 대추장의 아들인 햄릿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를 저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죽은 대추장에게는 형제가 없었나요? 그의 아들은 대추장이 됐나요?"
나는 대답했다. "아뇨. 형이 죽자 동생이 대추장이 되었죠."
한 장로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 악령은 젊은이들보다는 대추장이나 장로들과 관계가 있을거요. 아마 호레이쇼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소."
"아니예요. 그는 분명 '지혜로운 사람'이었어요." 나는 쥐고 있던 술병으로 내게 다가오는 닭을 쫓으며 그렇게 주장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버지 다음에는 아들이 대추장이 돼야 하는데 뭔가 잘못되어 동생이 대추장이 된 거죠. 그리고 대추장의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 뒤에 그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했거든요."

"아주 잘했는걸." 한 장로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소. 서양 사람들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이오. 여기서도 그렇게 한다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고 형의 자식들의 아버지가 되지. 만약 당신의 작은 아버지가 과부가 된 당신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당신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한테서 난 자식이라면, 그는 당신에게도 진짜 아버지가 되는거요. 그런데 햄릿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같은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자식이었소?"
나는 그의 질문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아마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확신할 수는 없았다. "햄릿"의 원작 속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으니까. 그 장로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오. 귀국하면 당신네 장로들에게 꼭 물어봐야 하오"라고 내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러고 나서는 여러 아내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아내에게 염소가죽 가방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햄릿"의 중요한 주제인 형이 죽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한 문제와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의 재혼과 관련된 설명은 일단 젖혀놓기로 하고, 숨을 한번 깊이 들이마시고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머니가 너무 빨리 재혼했기 때문에 햄릿은 굉장히 슬펐습니다. 우리 관습에 따르면 과부는 최소한 2년간 상을 치른 후에야 재혼하는 것이 보통이거든요." "2년은 너무 길어요"라며 조금 전에 그 장로의 심부름으로 해진 염소가죽 가방을 가져온 그의 아내가 반대 의사를 표했다.

"남편이 없으면 누가 밭을 매 주나요?"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말을 되받았다. "햄릿은 어머니의 밭을 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이유로 어머니가 재혼할 필요는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아무도 납득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포기했다.

"햄릿의 어머니와 대추장은 햄릿에게 슬퍼하지 말고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지요. 왜냐하면 대추장이 이제 햄릿의 아버지가 됐으니까요. 게다가 햄릿은 다음 대추장이 될 사람이었거든요. 대추장이 되려면 많은 것을 배워야 했기 때문에 슬퍼도 그곳에 있어야 했죠.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햄릿의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올바르게 처신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내가 황망한 가운데 그들에게 햄릿의 반감에 찬 독백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죽은 대추장의 다른 아내들과 결혼한 사람은 누구였지요?" 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는 다른 아내들이 없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대추장은 원래 많은 아내를 거느리잖아요! 다른 아내가 없었다면 도대체 술은 누가 빚고 또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누가 하지요?"라고 그 젊은이가 의심에 찬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리 대추장이라고 해도 아내는 단 한 사람뿐이며, 다른 일들은 하인들이 맡아 하는데 대추장은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에서 일부를 떼어 그들에게 지불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이에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대추장이 많은 아내들을 거느려 그의 밭은 매게 하고, 그 대가로 백성들을 보살펴주는 편이 더 낫죠. 그렇게 하면 백성들은 많은 것을 주면서도 자기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대추장을 더 좋아하고 따를걸요. 세금은 나쁜 것이에요."

나는 "세금은 나쁜 것"이라는 마지막 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원래부터 그래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에요"라고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평소에 그들이 어렵거나 난처한 질문을 회피할 때 즐겨 사용했던 수법인데, 이번에는 내가 그것을 적절히 써먹은 것이다.

햄릿의 독백 부분은 건너뛰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람들은 클로디우스가 형수와 결혼한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독살이라는 주제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들이 형제를 살해하는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잃지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어느 날 밤에 햄릿은 죽은 아버지를 보았다는 세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죽은 대추장은 그곳에 다시 나타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겁을 먹고 달아났고, 결국 죽은 아버지와 햄릿 단 둘만이 남게 되었지요. 죽은 아버지는 햄릿에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악령은 결코 말하지 않아요!" 촌장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햄릿의 죽은 아버지는 악령이 아니예요." 나는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 그들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햄릿의 죽은 아버지 같은 존재를 우리는 악령이 아니라 귀신 ghost 이라고 부른답니다."
"귀신이 대체 뭐요? 악령과는 어떻게 다르죠?"
"귀신은 죽었지만 걸어다니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해서 산 사람들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또 볼 수도 있는, 그런 거죠. 물론 만질 수는 없지만요. 말을 하지 않는 악령하고는 달라요." 그러나 그들이 이런 내 설명을 수긍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되살아난 시체 zombi는 만질 수 있는데." "아뇨, 아니에요. 그건 제물로 바치기 위해 마법사들이 일부러 생명을 불어넣은 그런 시체가 아니예요. 마법사가 햄릿의 죽은 아버지를 걷게 만든 건 아니예요. 그는 스스로 그렇게 한 거예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들은 절대로 죽은 사람이 스스로 걸을 수는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이미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혼령 같은 거예요." 그들 중 어떤 이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죽은 사람에게는 혼이 없소"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서 나도 질세라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죽은 사람에게도 혼이 있어요"라며 그의 말을 가로채며 크게 말했다.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나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쨌든 햄릿의 죽은 아버지는 햄릿에게 자기 동생이 자기를 독살했다고 말했어요. 그는 아들이 복수를 해주기를 바랐던 거죠. 햄릿은 작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전적으로 믿었어요." 나는 술을 한모금 더 들이켰다. "대추장의 나라는 아주 넓은 곳이었어요. 대추장에게는 폴로니우스라는 대장로(*실은 재상이지만 티브족에는 재상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장로 중에서 높은 지위를 가리키는 의미인 대장로라는 말을 대신 사용했다*)가 곁에 있어서 그와 나랏일을 상의했어요. 폴로니우스는 대추장에게 나랏일에 대해 조언을 하는 등 도움을 주었지요. 당시 햄릿은 폴로니우스의 딸인 오필리아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는데 폴로니우스와 그녀의 오빠인 레어티즈는 그녀에게 절대로 햄릿을 만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어요. 왜냐하면 햄릿은 앞으로 대추장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녀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왜 결혼하면 안 되는 거죠?"라며 촌장의 부인이 물었다. 촌장은 그녀가 매우 어리석고 한심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그들은 같은 마을에 살았잖아!"라며 성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티브족 사람들에게는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는 혼인을 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어요. 폴로니우스는 대추장을 돕기 위해 그곳에 살았던 거지 원래 그곳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대추장과 친척 관계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왜 햄릿이 그녀와 결혼하지 못한다는 거죠?"
"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폴로니우스는 햄릿이 자기 딸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햄릿은 결국에는 다른 나라 대추장의 딸과 결혼해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 나라에서는 부인을 한 명밖에 둘 수 없었으니까요. 폴로니우스는 그런 햄릿이 자기 딸과 사귄다면 나중에 비싼 신부대를 지불하면서까지 그녀와 결혼하려고 할 남자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거죠" 라고 내가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건 그렇겠구만." 장로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대추장의 아들인 햄릿이 나중에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의 아버지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을 만큼 선물도 주고 후원도 해줄텐데. 내가 보기에 폴로니우스는 바로로구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요"라며 나는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폴로니우스는 자기 아들인 레어티즈를 프랑스 파리에 보냈어요. 프랑스에 대해 배우고 오라고요. 그 나라는 자기 나라보다 더 크고 힘센 나라였어요. 그는 아들이 술과 여자와 도박에 돈을 흥청망청 써대거나 싸움질을 하는 등 말썽을 일으킬까봐 염려스러워 나중에 하인 한 명을 따로 보냈어요. 아들이 뭘 하면서 지내나 염탐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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